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루히토/헤이세이 시대 (문단 편집) == 결혼 소동 == 여기까지만 보면 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나, 문제는 그가 이때까지 미혼에다 약혼녀도 없었다는 것이었다. 당시 일본의 결혼 적령기가 20대 중반이었다는 걸 감안하면,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. 남동생 [[후미히토]] 친왕이 기다리다 못해 [[1990년]]에 먼저 대학 후배[* [[캠퍼스 커플]]이었다.] [[가와시마 키코]]와 결혼해서 이듬해에 [[마코 공주]]까지 낳자, 황실 안팎은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 문제로 들끓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-UMNlReULv4)]}}} || || {{{#dca600 '''황태자비 후보 여성들 집중 취재영상.'''}}} || 당시 황태자비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류층 여성들을 취재하는 영상이다. 말이 취재지 사실상 거의 [[스토킹]]이나 다름 없었다. 아침에 출근을 하거나 외출을 하러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취재진들이 달라붙어 따라오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는 모습이 나온다. 영상 속에 나오는 여성들은 불편해 하거나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며,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모습이 대다수이다. 참고로 동영상에서 나오는 여자들 중 마지막 후보가 바로 [[마사코 황후|후일 결국 황태자의 신부가 될 인물]]. 사실 그는 이미 1986년 10월 [[스페인]] 엘레나 공주[* [[후안 카를로스 1세]]의 장녀. [[펠리페 6세]]의 큰누나.]의 영접식에서 만난 '''한 여인'''을 사모하고 있었다. 그녀는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 오와다 히사시의 장녀로서 영접식 파티에 참석한 '''[[마사코 황후|오와다 마사코]]'''. [[국제사법재판소]]장으로 유명한 외교관 오와다 히사시(小和田恆)[* 2018년 큰딸이 황후가 되기 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해서 현재는 자택에서 막내딸과 같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.]의 [[장녀]]로, '''[[하버드 대학교]] [[경제학과]]'''를 졸업한 뒤 [[도쿄대학]] [[법학부]]에 [[편입학]]하여 다니다가 [[1986년]] [[외무고시|외무공무원 상급채용 1종시험]]에 합격한 엘리트였다. [[마사코 황후|오와다 마사코]]에게 푹 빠진 나루히토 황태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끈질기게 계속 청혼했다. 그러나 마사코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유분방한 삶을 원한 데다가, 마침 [[옥스퍼드 대학]] [[대학원]]으로 2년 과정의 연수를 떠나려던 참이었기에 정중히 거절한다. 게다가 외할아버지 에가시라 유타카(江頭豊)는 [[미나마타병]] 추문을 일으킨 칫소 社의 회장이었으므로[* 단, 에가시라 유타카는 미나마타병 사건 이후 칫소 사의 회장이 되었기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다.], 마사코는 [[궁내청]]의 심사에서도 탈락한다. 그 후 [[나루히토]] 황태자는 결혼을 전제로 여러 여자들을 만났지만 진지한 관계까지 발전하지 못했고[* <[[일본 황실|일본 왕실]]에 갇힌 나비 [[마사코 황후|마사코]]>라는 책에 의하면, 나루히토 황태자가 28살 때 진지하게 만나던 동갑내기 여성이 있었다. 그녀는 [[가쿠슈인]] 출신이었고, 그녀의 집안은 황실과도 돈독한 친분이 있었지만, [[궁내청]]의 조사 결과 황태자비 후보에서 탈락했다. 왜냐하면, 그녀의 증조할아버지가 [[일제강점기]] 당시 [[조선총독부]]에서 일하며 조선을 수탈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. 침략자의 피가 흐르는 여성이 [[황후]]가 되면, [[한일관계|한국과의 관계]]가 껄끄러워질 것이라는 진단이었다. 다만 나루히토 황태자의 제수인 [[키코 비]]는,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도 황실로 시집올 수 있었다. 아마 둘째 황자의 비(妃)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게 뽑은 듯하다.], 1990년에 2년 과정의 [[영국]] 연수를 마친 후 귀국한 마사코에게 다시 접근한다. [[궁내청]]에서 "저런 흠 많고[* [[마사코 황후/결혼 전]] 항목에 들어가면 알겠지만, 사실 그 흠이라는 게 '나루히토보다 키가 크다', '딸만 낳은 집안 출신' 뭐 이 따위 것들이다. 완전 [[전근대]] 시절의 인식 그 자체다.] 미천한(!) 여자는 절대로 안 된다"고 반대했고, 황실에서도 계속 결혼 논란이 길어지자 안 좋게 여겼지만[* 당시 결혼 찬성파가 [[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]]와 그의 아내 [[히사코 비]]뿐이었다.], 나루히토는 포기하지 않았다. 그는 "[[마사코 황후|오와다 마사코]]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"고 강경하게 고집을 부렸다. 결국 궁내청과 황실에서도 [[백기]]를 들었고, 마사코가 받아들일 때까지 노력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